
[스타인뉴스 장은송 인턴기자] 누가 착하기만 한 드라마는 안 된대요? 여기 떡하니 착한 드라마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드라마, SBS 방영(2018.07.23. ~ 2018.09.18.)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가 있는데.
◆ 어른들을 위한 힐링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는 드라마의 클리셰 요소인 악역도, 사랑을 방해하는 훼방꾼도 없다. 오로지 우서리(신혜선 분)와 공우진(양세종 분)의 이야기에 집중해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심심하지 않게 전개될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수많은 복선이 깔려져 있었고, 또 두 사람이 열일곱 살일 때부터 이루어졌던 서사가 완벽했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 즉 감정선들을 시청자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꼼꼼했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은 모두 착했지만 답답한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우서리와 공우진 이야기를 보며 힐링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드라마를 보는 시간도 내게는 불안했다. 이 시간에 토익 단어라도 외워야 되지 않을까, 뭐 하나라도 취업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취업이 내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취업이 되면 행복하겠지. 하지만 내 주변에는 이미 소소한 행복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를 보며 엄마랑 오손도손 얘기하는 것. 이 드라마는 내게 또 다른 행복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려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 드라마 하면 하이틴 드라마, 즉, 학생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분명히 말한다. 서른일지라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고.
신혜선 배우가 맡은 우서리 역은 17살에 교통사고로 13년간 혼수상태로 살다 30살에 눈을 뜬다. 원래는 바이올리니스트 유망주였고 대학까지 탄탄대로의 길만 걸으면 됐다.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서른 살이라니. 남들 다 취업 혹은 심지어 결혼까지 할 나이인데 자기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돈도, 집도 그리고 가족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할 것이다. 나 같아도 어쩌면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을걸. 그런데 서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무작정 원래 살던 집으로 향해 우진과 유찬을 만난다. 그리고 인형 눈 붙이기 등 고등학교 중퇴의 스펙으로 할 수 있는 돈이 될 만한 모든 일들을 통해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하려고 엄마가 준 바이올린을 고친다.
사실 성장은 양세종 배우가 맡은 공우진 역이 더 필요했다. 17살에 자기의 말 한마디로 자신이 좋아했던 서리를 본인이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간다. 일부러 이어폰을 끼고 타인과 불필요한 접촉, 대화 모든 걸 차단한다. 제목인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라는 건 서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17살 때의 트라우마에 갇힌 우진에게도 해당이 되는 문구였다. 결국 우진은 자기 집에서 머물게 된 서리에 의해 한 발자국씩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우리도 스스로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들을 통해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쑥쑥 크는 것만이 성장은 아니니까. 때로는 서리와 우진처럼 넘어지고 상처받은 것들을 통해서도 그 모든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라고 느꼈다.
◆ 빛나는 조연 캐릭터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흥행 요소 중 하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직진인 연하남 캐릭터 ‘유찬’ 역에 ‘안효섭’부터 시작해서 제파고(제니퍼+알파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국 드라마계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 ‘제니퍼’ 역에 ‘예지원’ , 또 유유상종이라고 깨 발랄하고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따습기는 세계 제일인 유찬 친구들, 세상 어느 회사 대표가 저렇게 멋있죠? 여성 시청자들이 덕질하게 만든 우진 친구이자 회사 대표인 ‘강희수’ 역에 ‘정유진’ , 국어 모의고사 4점에서 오직 서리를 위해 재수까지 하고 의사가 되어 시청자들이 형태가 서브 남주가 아니라고요? 의문을 갖게 한 ‘김형태’ 역에 ‘윤선우’까지.
다른 드라마들보다 조연 분량들이 많은 게 아닌데도 한 번 나올 때마다 큰 존재감을 뽐냈다. 그렇다고 전개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시청자들은 이런 조연들이 안 나오면 섭섭해할 정도였다. 과거 작가님이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극본을 맡았는데 그때의 코미디 감각을 최대한 살려서 조연 캐릭터들에게 넣으신 것 같았다.
내 최애 장면은 6회에서 유찬 친구들이 우진 집에 와서 막 이것저것 배달음식 시키고 뻔뻔하게 있는 그 장면. “안 먹는다고, 꿔바로우.(6화 중 우진의 대사)” 또 내 최애 캐릭터는 아무래도 강희수 대표이다. 처음에는 홈페이지에 세상 남한테 관심 없는 절친 공우진이 우서리에게 관심을 보이자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고 캐릭터 설명에 적혀져 있어서 아 악역은 이 사람이구나 했는데 웬걸, 너무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사랑의 큐피드 역할이다. 그것도 서리한테 은근슬쩍 가방도 사주지, 특별출연한 ‘권혁수’가 서리를 건드리니까 바로 욕도 하지. 걸크러쉬의 표본이었다.
◆ 내가 분석한 이 드라마의 시청자 타겟은 20대, 30대 여성
일단 20대 여성들에게는 대리 설렘을 제공해 주니까. 공설 커플(공우진 X 우서리) 두 사람이 딱 썸과 연애 초반, 그 풋풋함을 잘 그려내고 있다. 괜히 내가 연애하는 게 아닌데도 꽁냥거리는 둘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엄마 미소로 지켜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첫 뽀뽀를 하고 나서도 처음이라고 부끄러워하더니 공우진 역시도 처음이라고 하자 금방 또 놀리는 서리, 귀여워. 그리고 세상과 문 닫고 살다가 서리를 만난 이후로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생을 따라 ‘북 치기 박치기 댑~’도 하고 혼자만의 개그코드로 장난치는 우진이도 시청자들이 발리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사실상 극 중에서 동갑인데 한 명은 아저씨라고 부르질 않나, 서로 존댓말하고 아끼는 거 보면서 마지막 화까지 시청자들은 "쟤네 언제 결혼해?"를 외쳤다.
그리고 30대들은 대부분이 직장인일 것이다. 이제 막 퇴근하고 맥주 한 병 까서 편안하게 집에서 드라마를 볼 타이밍인데 그 드라마가 고구마 파티라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악역이 뒤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걸 시청자들을 다 아는데 주인공만 몰라. 그래서 그 꾐에 빠져서 주인공이 위험해지는데 몇 화 동안 그게 풀릴 기미가 안 보여. 나 같으면 욕하고 리모컨 바로 냅다 던지지. 그런데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안 그렇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서리랑 우진이 스스로 해결해낸다. 예를 들어 후반부쯤 우진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았을 때에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여기서 우진이 도망갈 거라고 다소 고구마 같은 전개를 예상했다. 하지만 사이다 한 바가지인 우진은 이내 돌아왔고 오히려 서리에게 자신에 대한 마음을 고백했다. 드라마 전부가 이런 식으로 사이다를 제공하니 30대 직장인들도 얼마나 시원하게 그리고 편하게 보겠는가.
이렇게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를 누구나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