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에 대한 항해일지, 뮤지컬 '해적'
새로운 세상에 대한 항해일지, 뮤지컬 '해적'
  • 고유진 인턴기자
  • 승인 2021.07.28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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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해적' 포스터
뮤지컬 '해적' 포스터

 

[스타인뉴스 고유진 인턴기자] 새로운 세상으로 나선 해적들의 이야기가 뮤지컬 '해적'을 통해 펼쳐진다.

뮤지컬 '해적'이 2019년 초연과 앵콜 공연에 이어, 2021년 재연 공연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2명의 배우가 4명 이상의 배역을 소화해야 하는 이 극은,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초연 때부터 큰 화제를 모았는데, 잭과 메리가 여자 캐릭터이기 때문에, 젠더 프리 캐스팅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앤 역에는 정동화, 최석진, 김이후 배우가, 잭/메리 역에는 주민진, 김대현, 김려원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이희준 작가 특유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바다를 배경으로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루이스와 잭의 이야기

앞서 언급했듯이 해적은 2명의 배우가 4가지 이상의 배역을 소화하는 작품이다. 크게 이야기는 루이스와 잭, 그리고 앤과 메리의 이야기가 섞이며 함께 흘러가는데, 먼저 루이스와 잭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루이스는 작가가 꿈인 어린 소년으로 해적이었던 아버지 케일럽의 밑에서 자랐다. 새로운 세상, 바다에 대한 동경을 남모르게 가지고 있던 루이스는 아버지의 선장이었던 잭을 만나게 되며 그와 함께 바다로 나가게 된다. 잭이 루이스를 찾아온 이유는 케일럽이 갖고 있던 보물섬 지도를 얻기 위해서였는데, 여자와 아이는 배에 태우지 않는다는 철칙에도 불구하고 루이스의 막무가내식 주장에 결국 함께 보물섬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루이스와 잭의 관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빠와 아들의 관계와 비슷한 유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는 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루이스는 해적선에 올라 꾸준히 항해일지를 적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항해일지 속 가장 많이 기록된 이름은 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넘버 “우리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으로 루이스와 잭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우리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 rep”으로 둘의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바다와 해적 이야기를 해주는 잭의 모습을 보며 바다로 나가야겠다고, 항해일지를 써야겠다고 결심하는 루이스의 초반부 모습은 후반부의 끝까지 살아남아서 항해일지를 적어야 하지 않겠냐고 웃으며 말하는 잭을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이어지면서 둘의 이야기는 끝맺음 지어진다.

 

앤과 메리의 이야기

앤은 귀족 집안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였다. 당시 사회에서 사생아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었던 곳은 혼인서약서뿐이었고, 앤은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잭의 해적선이 앤의 술집이 있는 곳에 잠시 정박하게 되었고, 앤은 잭과의 대결을 통해 총잡이로 해적선에 올라타게 된다. “질투하라”라는 넘버를 통해 우리는 앤이 사생아라는 이유로 자신을 축복하지 않은 교회를 스스로 뒤로하고 자신만의 신을 찾아 바다로 나선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앤이 이미 그 순간 자(신만의)신을 만난 것 같다고 느꼈다. 바다로 나서기로 한 순간, 이미 앤에게는 신이라는 존재가 필요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신으로 충분한 앤을 질투하라는 의미처럼 들려와서 유독 이 넘버가 좋았다.

바다에서 앤은 자신이 찾던 신과 같은 존재인 메리를 만나게 된다. 메리는 칼을 쓰는 검투사로 자신의 존재는 지워진 채 오빠의 그늘 아래 살던 과거를 가진 인물로, 바다에서 하루하루 삶에 대한 의욕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메리가 앤과 마주하는 순간, 잊고 있던 삶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게 된다. 둘의 첫 만남은 메리가 잭의 보물섬 지도를 빼앗기 위한 싸움에서 시작되는데, 첫눈에 두 사람은 서로가 자신들이 찾던 사람임을 확신한다.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순간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잭은 앤의 포로가 되어 잭의 해적선에서 함께 항해를 이어나간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넘버 “Love at first sight”로 시작되고, “우리 모두의 기억나지 않는 꿈”으로 마무리된다. 앤과 메리의 이야기는 칼날을 부딪치며 단숨에 빠져들던 첫 만남에서 영원한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으로 이어진다. '밤하늘에 헤엄치는 고래와 밤바다에 가라앉은 별 하나 그게 나야' 라고 말하는 메리의 마지막 이야기에 살아보겠다며 돌아서는 앤의 모습으로 둘의 이야기는 끝맺음 지어진다.

 

해적의 황금시대 이야기

루이스와 잭, 앤과 메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기는 하지만, 루이스와 메리, 잭과 앤의 이야기도 극 곳곳 등장하며 네 인물의 관계성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이다. 루이스에겐 잭 뿐만 아니라 앤과 메리라는 소중한 가족이 생겼고, 겁쟁이 해적이었던 잭은 마지막 순간 루이스에게 누구보다 멋있는 해적의 모습을 보여준다. 삶의 의지 없이 그저 살아가던 앤과 메리는 서로를 통해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되었고, 어디에서든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 “피날레” 넘버를 듣고 나면 기분이 정말 묘해진다. 극을 이루는 넘버들이 동화 같은 느낌을 더해주는 데 반해, 결국 네 인물의 이야기는 이별로 끝이 나기 때문에 쓸쓸한 감정을 남긴다. 그 점이 이 극의 여운을 더해주는 것 같다. 마지막 넘버로 돌아와 홀로 남은 루이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었을까? 루이스의 상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날레 역시 여러 넘버의 리프라이즈가 등장하는데, “항해일지” 넘버가 리프라이즈 되며 가사가 바뀌어 나오는 부분이 가장 좋았다. ‘어머니의 뒷모습’은 ‘캡틴 잭의 뒷모습’으로, ‘아버지의 혼잣말’은 ‘앤과 메리 목소리’로 바뀐 가사를 들으며 루이스에게 그들이 가족,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는게 느껴졌다.

해적들이 힘차게 바다로 나가던 해적의 황금시대는 결국 끝이 난다. 무대 위에는 루이스만 홀로 남아 그가 적었던 항해일지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나는 이 결말이 마냥 쓸쓸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초반 유서를 쓰겠다고 말하던 루이스가 이제는 항해일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섰던 그들의 항해는 남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밝은 별 하나를 띄워주었다.

 

뮤지컬 '해적'은 8월 29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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